이제 코비드라는 단어는 마스크처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실시간으로
보고되는 코비드 관련된 메시지는 가족의 소식보다 더 자주 우리를 찾는다. 고립된 사람들, 경제적 손실, 정신적 후유증, 미래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 등에 대한 뉴스와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울, 불안, 불면을 호소하는 이들에 대한 소식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다시 코로나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소비를
통해 고립감과 박탈감을 해소하는 이들, 팬데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환경 문제에 대해 철저한 자세로 힘을
보태는 이들도 있다. 검역과 여행금지는 비행기와 다른 탈 것들이 내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게 했고 경제
활동 통제 역시 소음, 수질오염, 자동차 공해 문제를 잠정적으로나마
멈추게 했다.
아쉽게도 의료 장구, 소독제, 마스크, 고무 장갑 등의 사용 급증으로 환경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했다.
지속가능한 산업, 환경친화적 운송, 재활용 에너지와 수자원 재생에 대한 관심으로 개인과 기업문화 모두 변해야 한다. 특히 환경친화적인
정책은 전세계적으로 공조화되어야 효과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분야의 배출량이 7%, 농업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2%가량 줄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팬데믹은 그동안의 물질지향주의, 자연환경에 대한 몰이해와 무책임함, 멀고 가까운 이웃의 운명이 어떻게 서로에게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직면을 하게 해 준다. 특히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지향하며 만족하지 못하는(discontents) 심리가 가져온 부정적인 결과 중 하나가 팬데믹일
수 있지 않을까. 환경에 대한 고려 없는 환경 파괴가 새로운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변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비드 팬데믹으로 인해 의료와 경제 시스템이 전지구적으로 흔들리고 있기에, 문명
발전이 지속된다는 낙관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과학과 기술 발전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영적인 정신세계는 그만큼 빠르게
발전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다행히, 전 지구적
재난 후, 인류는 자신과 세계의 어두운 측면과 만나야 하기에 병의 뿌리를 볼 기회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융 분석심리학적 용어를 쓰자면, 자신의 그림자 콤플렉스를 대면하게
된 것이다. 팬데믹에 대한 인류의 집단적 반응은 나병, 페스트, 매독, 스페인 독감 등등 전염병의 종류와 상관없이 공통되는 패턴이
있다. 두려움, 불안, 절망
등의 개인적 감정과 더불어 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집단에 대한 투사가 그것이다. 페스트와 관련된 중세의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박해, 코비드와 관련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들은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사회의 파괴적
정신 상황, 융 심리학적 용어로 바꾸자면 부정적 집단 콤플렉스(Group
complex)라고 할 수 있다.
검역과 격리도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유사한 반응을 유발한다. 팬데믹은
공동체 생활에 꼭 필요해서 진화한,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trust)와
친화적 태도(affinity)를 버리도록 강요한다. 군락동물(herding animal)인 인류에게 협동과 교류는 존재의 지속에 꼭 필요한 본능인데, 그 반대로 역주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집단과 분리된 참 자기 (the true Self)가 무엇인지 묻고 실천하게 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전쟁, 전염병, 자연재해
등의 극한상황에 이르게 되면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고, 왜 사는가, 죽음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같은 성찰들은 실천이 따라야 비로소 의미가 부여된다.
역설적으로 팬데믹은 인류 역사상 성장의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4세기 페스트, 흑사병은 각각 중세와 근대를
열게 한 기폭제였고, 코비드 역시 포스트 노멀(Post-normal) 시대를 여는 계기다. 비대면 회의, 재택근무
등으로 외향적인 태도 없이도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거리로 나서거나 총칼을 들지 않아도 해킹과
댓글 활동 등으로 온라인 상에서 전쟁을 치르거나 혁명을 완수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만, 인터넷 이용률, 디지털
리터리시, 코딩 능력 등이 책을 읽는 문해력 혹은 그 어떤 교양보다 더 중요한 인력 자원의 척도가 되었기에, AI보다 더 기계 같은, 그래서 더욱 비인간적이며 파괴적인 좀비
인간의 숫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온라인상에서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고, 더욱 무지하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사회가 폭주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건설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진짜 지도자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마음과 몸을 함께 연구하며 치료하는 의료진이 균형 잡힌 가치관과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성숙한 사회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뜻이다.
출처: 서울대학교 코로나19 과학위원회
등록일자: 2021-07-19